공자 사상을 바라보는 눈

범기철 칼럼리스트 | 기사입력 2025/07/20 [21:19]

공자 사상을 바라보는 눈

범기철 칼럼리스트 | 입력 : 2025/07/20 [21:19]

▲ 범기철 칼럼리스트 ©시사포스트

20여 년 전 김경일 교수는 그의 저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 해괴한 논리를 전개했다.

 

공자가 수레를 타고 주유천하를 한 것은 홀로 잘 먹고 잘살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다. 미인을 구하기 위한 주유도 아니었다. 천하를 품에 안고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자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꿈을 끝까지 지켰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공자의 보수성 비판이나 공자 정신의 회복 운운이 아니라, 타락한 사회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방편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출현이라고 믿어진다.

 

특정 종교 시설이 대형화되어있고 수많은 수도 단체들이 있지만, 현재 한국 사회는 한마디로 매우 혼탁하다. 11세기 일본의 승려 도겐(道元, 1200∼1253)은 당시 일본 왕가와 귀족집단이 결탁하여 부정부패가 만연한 일본 사회를 홀로 산속에서 결가부좌(禪) 하여 구했다.

 

그가 남긴 저서 『정법안장』은 일본을 지탱하는 한 힘이고, 한국의 고승들도 탐독했다고 한다. 석가모니는 인도 사람이다. 그가 깨친 것은 인도 사람의 마음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 그 실체를 깨친 것이다.

 

‘부처의 눈으로 세상이나 사람을 바라보면 부처처럼 보인다’라는 무학 대사의 유명한 말처럼 유교를 다른 눈으로 보고자 하면 공자를 팔고, 공자를 죽이자는 모순을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공자의 세상과 인간을 보는 자세와 말과 행동이 같아야 하며, 마음이 닮아야 한다.

 

백결선생은 학자가 되려면 “여자를 가까이하지 말고, 술도 가까이하지 말라”고 했다.

 

출세는 부귀영화에 드는 길인데 그것을 멀리하면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라고 물으니 “그것을 멀리하고 그것보다 더 행복한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 보일 때 학자가 될 자격이 있다”라고 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아니라 타락된 이 사회에 더 많은 성인 공자가 나타나야 나라가 산다. 유교 비판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누가 죽어야 산다는 식의 논리는 학자답지 못한 지극히 단세포적인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학자로서의 인간적 성취를 위해 ‘공자 바이러스’ ‘주자의 사기극’ 등으로 비난을 한다면 그는 학자의 자격이 없다. 학문탐구는 끝없는 자기 수양을 통해 인간 내면을 성찰하고 사회 본질을 통찰하는 과정이다.

 

공자는 당시 시대상에서 아픈 현실에 고뇌하며 천하를 떠돌았고, 주자는 그렇게 군주보다 높은 보편원리를 체득하기 위해 죽기 전날까지 책상에 앉아 교정을 보았다.

 

‘유교 문화에 대한 반성적 해체’를 주장하려면 유교에 대한 충분한 지적 성취를 바탕에 깔아야 한다.

 

예컨대 다산 정약용은 철저한 유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유교의 유효기간이 끝났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련을 통해 500여 권의 주옥같은 저서를 후세에 남겨 위대한 일생을 살았다.

 

중국과 일본의 유교를 들여다보면 그들은 유교를 버리지 않고 재해석해서 국가발전에 채용했다. 이제 정치권의 선거 방식이나 정권의 운영, 회사의 경영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국민도 도덕으로 무장해야 하며, 한국 정신, 광주 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공자 사상의 정치화로 폐해를 낳았고, 주자학의 관제화가 주자를 반대하는 양명학을 낳았다. 모든 학문은 교조화되면 부패하게 된다. 이것을 반면교사 삼아 수정 보완해가면 될 일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김경일 교수의 20여 년 전의 사고를 이제 와서 질책하기에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필자가 공부한 유교의 해석과 김정일 교수가 쓴 책의 내용과는 많은 괴리가 있기에 늦게라도 그의 사고를 지적하는 것이다.

 

김경일 교수는 “공자는 예(禮)를 무척 강조했다. 공자의 극기복례 사비(四非)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예는 오늘날의 상식이나 에티켓이 아니라, 공자 이전의 통일국가였던 주나라의 제도인데, 과연 그것이 수 천 년을 뛰어넘어 복잡다단한 오늘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 문화가 정치적인 복종으로 포장되고 미화된 부분도 있지만, 삼강오륜이나 인의예지, 효제충신 가르침은 비록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개성과 품성 그리고 인성을 키워준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공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신문명을 구축해야 한다. 사서삼경에 이미 그 답이 나와 있다. 21세기의 공자에게 그 해법을 묻는다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겠는가?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범기철 칼럼리스트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