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삶의 터전은 하루아침에 모두 무너졌다. 국민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생존의 연속이었다. 굶주림과 질병, 빈곤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를 괴롭혔다.
국가 재건이 시급했던 시기, 박정희 정권은 농촌을 기반으로 한 새마을운동과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하려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원조를 위해 필리핀을 직접 방문해 협력을 요청했다. 그러나 필리핀 대통령은 면담에 응해 주지 않았고 결국 총리가 면담에 나섰다. 그만큼 당시 필리핀과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확연히 달랐다.
당시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였고, 6·25 전쟁 당시 한국에 군사적 지원을 했던 국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후 필리핀은 민주주의 이행 과정에서 반미 좌파 정권을 거치며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1980년대 중반, 마르코스 대통령이 미국 망명에서 돌아오는 정적 아키노 상원의원을 공항에서 암살하며 필리핀 정국은 대혼란에 빠졌다.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고, 그 결과 마르코스는 쫓겨났으며, 아키노의 부인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당시 시위대가 사용한 노란 리본은 훗날 김대중 평화민주당의 상징이 됐고, 노무현 정부를 거쳐 세월호 사건까지 이어지는 ‘상징’이 됐다.
코라손 아키노 정권은 “양키 고홈”을 외치며 반미 정서를 키웠고, 결국 미국은 1992년 수십만 명이 거주하던 필리핀 내 해군·공군 기지를 철수했다. 필리핀은 미국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 안일하게 생각했지만, 실제 철수가 단행되자 순식간에 전략적 공백이 생겼다. 이후 중국은 스카보로 섬을 무력 점령했고, 국제재판에서 필리핀이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해당 섬을 군사 요충지로 만들어 지금까지 점유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정의가 아닌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사실을 필리핀의 사례로 분명히 보여준 셈이다. 미군 철수 이후 필리핀 경제는 급격히 무너졌고, 수백만 명의 해외 노동자로 나가야만 했다.
이러한 필리핀의 경험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환경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한미동맹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현실은 가볍게 볼 수 없는 신호다. 주한미군 철수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 된다면, 한국의 경제와 안보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수 있다.
북한은 여전히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고 있고, 중국은 서해를 자국의 바다처럼 여기며, 일본은 독도를 군사적 거점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미국과의 동맹마저 외면한다면 대한민국의 존립 기반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그 되풀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국민의 깨어있는 시민의식이다. 과거의 뼈아픈 교훈을 잊지 않고, 냉철한 판단과 올바른 선택을 할 때만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존재한다. 이 나라가 자유롭고 안전한 나라로 존속하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의 분별력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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