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충남 대덕에서 태어난 김지미는 17세이던 1957년,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길에 김기영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계에 들어섰다. 데뷔작 황혼열차 이후 이듬해 별아 내 가슴에로 단숨에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한국 영화의 황금기로 불리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 스크린을 압도하는 감정의 결이 공존하던 그의 존재감은 당시 관객들에게 새로운 여성을 제시했다.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 장희빈, 불나비 등 수많은 작품에서 때로는 도시의 모던걸로, 때로는 치명적 팜므파탈로 스스로의 스펙트럼을 확장해나갔다.
그의 연기는 단지 스타의 화려함에 머물지 않았다. 토지(1974)에서 대지주 가문을 이끄는 안주인, 육체의 약속(1975)에서 사랑에 흔들리는 죄수, 길소뜸(1985)에서 이산가족 아들을 찾아 헤매는 중년 여성 등, 김지미는 거장들과의 협업 속에서 인물의 깊이를 밀어붙이며 여우주연상들을 거머쥐었다. 특히 길소뜸에서 후시 녹음 없이 거친 숨결까지 드러낸 연기는 지금도 한국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700편이 넘는 출연작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국 영화산업의 성장 곡선 자체이기도 하다. 1980년대 중반에는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해 티켓을 비롯한 7편의 작품을 제작하며 제작·행정 영역까지 발을 넓혔다.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스크린쿼터 수호 활동, 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 영화계를 지키는 자리에서도 굳건한 역할을 해 ‘영화계 여장부’라는 별칭을 얻었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는 “배우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종착역에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었다. “저를 사랑해주신 여러분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기를 바란다”는 그의 인사는 이제 현실이 되어 돌아온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영화인장 준비에 들어갔다. 한국 영화의 한 시대를 이끌고, 수많은 스크린 속 여성의 얼굴을 만들어온 배우 김지미. 한국 영화는 오늘 또 하나의 별을 떠나보냈다. <저작권자 ⓒ 시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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