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 민주주의는 그날로 멈춘다

김건옥 강원본부장 | 기사입력 2026/06/04 [14:44]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 민주주의는 그날로 멈춘다

김건옥 강원본부장 | 입력 : 2026/06/04 [14:44]

▲ 김건옥 강원본부장 ©시사포스트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꽃은 저절로 피지는 않는다.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철저히 준비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살아 숨 쉰다. 이번 6·3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경고음이다.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는 국민이 그 주권을 직접 행사하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이다. 그런데 투표용지가 부족해 과도한 대기 끝에 발길을 돌리고 투표권 행사를 하지 못했다면 국민 주권 행사를 가로막는 중대한 사안이다.

 

선거 관리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국민이 단 한 사람도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하는 일이다. 선거는 예상이 아니라 대비의 영역이다. 홍수에 대비해 제방을 쌓고, 화재에 대비해 소방시설을 갖추듯 선거 역시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고 준비해야 한다.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을 수도 있고, 특정 지역에 유권자가 집중될 수도 있다.

 

그런 변수까지 대비하는 것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유권자가 투표소를 찾아왔음에도 충분한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는 국가 행정의 신뢰 문제로 이어진다.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의 신뢰로 유지된다. 내가 지지한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도 선거 결과를 존중한다. 모든 유권자에게 동등한 참여 기회가 보장됐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거 과정에서 단 한 명이라도 권리 행사에 제약을 받았다면 국민의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치적 냉소주의를 키운다. “내 한 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생각과 싸우기 위해 국가는 수십 년 동안 막대한 비용과 공력을 들여왔다. 그런데 어렵게 투표소를 찾은 국민에게 준비 부족으로 불편을 안겼다면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번 사태는 반드시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디에서 예측이 빗나갔는가. 현장 대응 체계는 제대로 작동했는가. 비상 메뉴얼은 왜 충분히 가동되지 못했는가. 국민 앞에 낱낱이 밝히고 책임질 부분은 책임져야 한다.

 

특히 선거관리위원회는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이번 사태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독립성은 책임 회피의 방패가 아니라 더욱 엄격한 책임을 요구하는 근거여야 한다. 국민의 주권을 관리하는 기관이라면, 가장 높은 수준의 책무성을 보여야 한다. 투표소의 의자 하나, 투표함 하나, 투표용지 한 장이 제대로 준비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작동한다. 국민이 행사해야 할 주권이 행정의 허술함 앞에 멈춰서는 순간 민주주의도 함께 멈춘다.

 

국민의 참정권은 예산의 문제도 행정 편의의 대상도 아니다. 국가가 끝까지 지켜야 할 가장 신성한 권리다. 이번 투표용지 논란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민낯을 비춰준 경고장이며,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사건이다. 국민이 투표소를 찾았을 때 아무런 걱정 없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김건옥 강원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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