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평양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 환경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러 협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이루어진 이번 방북은 동북아 안보 지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한반도는 미·중 전략 경쟁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놓여 있다. 여기에 북한과 중국, 러시아 간 협력이 확대되면서 동북아는 더욱 복잡해지고 불확실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고립된 국가에 머물지 않고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전략적 거점으로서의 의미를 키워가고 있다.
이번 북·중 회담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궁극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외교와 안보 역시 힘의 균형 속에서 전개된다.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미국 중심의 안보 협력 체제를 견제하려 할 것이다. 북한 역시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을 활용해 대외적으로 협상력을 높이고 국제사회의 압박을 완화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한반도의 안보 불확실성을 더욱 증대시킨다는 점이다. 과거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거나 비핵화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북·중·러 협력이 강화될수록 대한민국이 마주하게 될 안보 환경은 더욱 엄중해질 수밖에 없다.
안보는 상대방의 선의에서만 유지될 수 없다. 강력한 억제력과 확고한 국가 의지, 그리고 국제적 협력체계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제질서의 진영화가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지나친 모호성은 외교적 유연성보다는 불확실성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동맹국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경쟁국에게는 전략적 빈틈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전문성과 일관성을 갖춘 외교·안보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고, 군사적 연합방위태세는 물론 첨단기술·경제안보·공급망 협력을 포괄하는 미래지향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아울러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협력도 현실적 국익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 협력 체제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고 동북아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축으로 기능해야 한다.
진정한 안보의 기반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안보 전략이다. 우리는 더 이상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만을 고민하는 국가가 아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세계적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 반도체·인공지능·방위산업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보유한 국가로 성장했다. 경제력이 곧 안보이고 기술력이 곧 국력인 시대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선도하는 국가로 성장할 때 우리의 외교적 선택지는 더욱 넓어질 것이다. 강한 경제력과 첨단기술, 그리고 국민 통합은 대한민국이 보유한 가장 확실한 안보 자산이다.
안보는 공기와 같다. 평소에는 그 소중함을 체감하기 어렵지만, 위협받는 순간 국가와 국민은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시진핑 주석의 이번 평양 방문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다가오는 지정학적 변화와 안보 도전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는가. 이제 필요한 것은 막연한 낙관도 과도한 불안도 아니다. 냉철한 현실 인식과 전략적 판단, 그리고 국가적 역량의 결집이다.
흔들림 없는 동맹, 강한 국방력,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경제·기술 경쟁력을 갖출 때 대한민국은 어떠한 도전 속에서도 평화와 번영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불확실한 국제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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