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해가 뜨겁고 대지가 바짝 메마른 날이면, 정원의 초록 잎사귀들은 숨을 죽인 채 몸을 웅크립니다. ‘나도사프란’ 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길쭉하고 싱그러운 부추를 닮은 잎사귀들은 화려한 꽃을 피울 기색도 없이 그저 묵묵히 흙 속에서 때를 기다릴 뿐입니다. 얼핏 보면 그저 평범한 풀포기처럼 보여 지나치는 이들의 시선조차 붙잡지 못하곤 합니다.
하지만 하늘이 어두워지고, 메마른 땅 위로 시원한 소나기가 쏟아지는 순간 정원의 공기는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서양에서 이 꽃을 '레인 릴리(Rain Lily)', 즉 '비백합'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찬 비가 대지를 적시고 지나간 직후, ‘나도사프란’은 마법처럼 흙을 뚫고 나와 꽃봉오리를 터트립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초록빛 잎사귀만 무성했던 자리에, 언제 준비했냐는 듯이 선명한 핑크빛 꽃잎과 눈이 부실 정도로 노란 수술을 번뜩이며 피어납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 존재감은 주변의 모든 풍경을 압도합니다.
마치 비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해 온 아이처럼 고개를 듭니다. 그 드라마틱한 등장은 우리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인생의 메마른 가뭄을 겪기 마련입니다. 노력해도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 같고, 자신의 존재가 그저 평범한 풀포기처럼 초라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도사프란’은 묵묵히 속을 채우며 기다린 알뿌리가 있다면, 거친 비바람은 시련이 아니라 오히려 피어날 기회가 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쌓인 인내는 결국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 이어집니다. 거센 소나기를 맞고서야 가장 아름답게 부활하는 이 작은 꽃의 꽃말이 왜 ‘즐거운 추억’, ‘신비로운 사랑’이라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우리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의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멈춘 것은 아니며, 조용히 쌓이는 시간은 반드시 언젠가 형태를 갖추고 드러나게 됩니다.
혹시 지금 마음속에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나요? 그렇다면 낙담하는 대신 사진 속 나도사프란의 당당하고 화사한 얼굴을 바라보세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당신의 삶에도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기적이 활짝 피어날 테니까요. <저작권자 ⓒ 시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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